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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총리 지명 내정자

Donochi 2014. 5. 22. 15:40

새로운 총리로 지명된 안대희씨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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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安大熙, 1955년 3월 31일 ~ )는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사법시험 동기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효숙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였다. 25세에 최연소로 검사에 임용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2·3부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 과장을 2번 역임하였다. 2006년 대법관이 되었고 2012년 대법관에서 퇴임하여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몸 담은 후 대선이 끝나자 정권에 참여하지 않고 현재는 안대희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경력[편집]

출생과 성장[편집]

그의 아버지는 회사원이었으며, 부산교대부속초등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서울특별시로 발령이 나서 혼자 부산에 남아 중학교를 다니다가 숭문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재학 중 사법 시험에 합격하자,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였다.

검사 시절[편집]

삼성 대선자금 수사[편집]

김용철은 당시 중수부장이던 안대희가 자신이 겪은 가장 청렴하고 능력 있고 강직한 검사인데, 2002년 대통령선거 때에 삼성그룹의 비자금이 한나라당에 전해진 것을 알고도 덮었다고 주장했다.[1]

비자금 수사[편집]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와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로 실체를 파헤치며 국민들 사이에서 안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수사를 같이하던 송광수와 함께 검사로는 최초로 팬클럽이 결성되기도 했다.[2]

대법관 시절[편집]

안대희는 중앙일보 네트워크 분석에서 대법관 중 전원합의체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가장 많이 낸 대법관으로 꼽혔다. [3] 또 김영란 대법관과는 분석에 사용된 판결에서 만장일치를 보인 것을 제외한 18건의 판결 중 16건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을 보였다.[4]

대법관으로서 그는 형사 사건과 조세 사건에 있어서 엄격하지만, 여성과 난민·무허가건물 입주자 등의 사회적 약자 보호엔 적극적이란 평가를 하는 언론도 있다. [5]

사형 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70대 어부가 젊은이들을 죽인 '보성 연쇄 살인사건'과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 두 건이다. 자기 스스로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백화점이 남품업자이 고용한 직원들에게 백화점 판촉일을 시키는 관행을 중지시킨 것을 꼽았다. [6]

취미[편집]

당구도 즐기며, 실력은 300 정도 친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또한,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프·테니스·바둑도 즐긴다. [7]

주석[편집]

  1. 이동 "2002 대선 자금 보인다, 보여", 《시사IN》, 2007년 11월 28일 작성. 2009년 6월 12일 확인.
  2. 이동 [1] 검찰 팬클럽까지 생겨 매일경제
  3. 이동 "범민련·송두율·전공노 건건이 충돌 … 대법원은 ‘이념 대결’ 중", 《중앙일보》, 2008년 5월 28일 작성.
  4. 이동 "김영란 - 안대희, 박시환 - 김황식 ‘물과 기름’", 《중앙일보》, 2008년 5월 28일 작성.
  5. 이동 권석천, 박유미, 최승식, 토요인터뷰 - 안대희 대법관 “판사 이념에 좌우되는 재판은 정의 아닌 불의중앙일보
  6. 이동 황방열, 이병한, 권우성, "정치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100% 이뤄졌다, 사형 집행 안 될 거라 생각하니 판결 부담 덜했다", 오마이뉴스
  7. 이동 강훈, 고졸 출신 안대희 대법관 "그냥 사시 봤는데 2년 만에 붙었어요" , 조선일보

과연 이번 새 총리는.....

쩝...